그 많던 ‘중립’은 어디로 갔을까?: 냉전기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 연구

일시: 2021년 10월 19일 (화) 12:00-13:00 장소: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2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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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9일 - 12: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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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9일 - 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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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210호)

발표자: 김도민(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

이메일: knehiet@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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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브라운백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본 발표는 김도민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가 2018년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박사논문 작성지원 사업을 통해 작성한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1948~1968년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 연구』에 대한 주요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본 세미나를 통해 해당 연구 주제를 고민하게 된 문제의식, 연구사적 의의, 학위논문의 내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이와 더불어 왜 지금 우리가 다시 ‘탈냉전 중립·비동맹’의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어졌다.

최근의 역사학계는 1980년대 말 이후 냉전의 책임소재를 묻고자 했던 냉전 연구에서 벗어나 냉전사라 불리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들이 한창이던 상황이었다. 나아가 냉전의 중심과 중심의 관계에서 확장하여 중심과 주변부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 성과들이 국내외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와 관련한 냉전 시기의 국내외 연구들의 경우에는 중심을 벗어나 주변부까지 시야를 확대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주변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김도민 교수는 주변부와 주변부를 통해 탈냉전 중립, 탈식민, 평화 등을 꿈꾸던 소중한 역사적 경험에 주목하고자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본 연구는 일차적으로 그동안 파편적으로 다뤄진 냉전 시기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정책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분기의 과정을 시계열적·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냉전의 최전선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는 비슷한 시기에 ‘쌍생아적’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한 정부 모두 1957년 최초로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중립국’을 방문하였으며 이후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중립국’을 둘러싸고 외교경쟁을 펼쳤다. 북한은 1950년대 후반 이룩한 경제발전의 자신감을 가지고 ‘정부’ 대표단을 파견하거나 초청하는 적극적인 ‘중립국’ 외교를 펼쳤다. 반면 남한 정부는 유엔총회에서의 한국 문제 표결 관련 위기 대응 차원에서 적극적인 ‘중립국’ 외교를 표방했다. 1957년이 남·북한이 ‘중립국’과 처음 만난 시점이었다면, 1965년은 남·북한 모두에게 ‘중립국’ 외교의 분기점이었다고 본 연구는 평하고 있다. 1965년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개최의 무산은 양극적 냉전 질서에서 탄생했던 반둥정신의 시효가 종료하고, 이제 다극적이고 국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냉전 질서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라 본 것이다.

이 시기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은 분열하였으며 미국은 더 이상 소련 같은 강대국과 적대하기보다 약소국을 공격하는 이른바 “새로운 랭전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북한은 교조주의 및 수정주의라는 좌·우 기회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작은 나라들과 자주적 연대를 추구했다. 남한의 ‘중립국’ 외교도 1965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남한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중립국’ 외교는 1965년 베트남 파병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남한 정부는 1960년대 미소의 접근과 다극화하는 냉전 질서 속에서 더이상 기존의 양극적 냉전 문제로서 유엔에서 한국 문제 표결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현실 판단 아래 박정희 새로운 냉전의 시대에 발맞춰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전방위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함으로써 다시 한번 새로운 ‘중립국’ 외교를 모색했다. 이처럼 남·북한 ‘중립국’ 외교는 1960년대 중후반 ‘주체적’ ‘자주적’ 전환을 모색하고 추진했다.

본 연구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남북한 주요 인사들의 새로운 만남에 관한 것이었다. 냉전이 아니었다면 한반도 사람들이 머나먼 중동과 아프리카, 심지어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국가 차원에서 방문하거나 그들을 한반도에 초청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1950,60년대 한반도에 살았던 외교 행위의 주체들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그들에게 느끼게 하려 했을지 연구자는 주목하였다. 1960년대 남·북한 주요 인사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만났을 때 어떠한 인식을 가졌으며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를 밝힐수록 반식민, 냉전, 경제발전 등 당 시대의 담론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1948년부터 1968년이라는 20년 동안에 걸친 남·북한의 외교정책과 담론의 변화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탈식민과 냉전, 분단 그리고 경제발전 등이 어떻게 상호교차하며 시기에 따라 무엇이 더 주도적이고 부차적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남·북한 통합적 분석을 통해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 경쟁에서 드러나는 남북관계의 비대칭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앞선 과정들을 통해 냉전의 최전선 남북한과, 냉전을 벗어나려는 주변부의 관계를 살펴봤다. 김도민 교수는 탈냉전이 도래했고, 냉전을 이제는 역사로서 연구한 지도 20년이 넘어간 이 시점에서도 우리는 한반도 분단과 정전이라는 엄연한 대립의 구도 속에서 여전히 냉전의 경험을 ‘역사’로서 연구하는 것 자체가, 즉 냉전사라는 말 자체가 성립 가능한지가 논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본 연구가 다룬 ‘중립’이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커져가는 적대와 혐오라는 독소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으며. 우리의 냉전 시기 역사적 경험에서 잃어버린 ‘중립’을 다시 호명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잃어버린 타자에 대한 감각까지 되찾기를 연구자는 희망하고 있다. 발표 이후 약 30분간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특히 역사학과 국제 정치학간의 중립국의 정의에 관한 시각차에 대한 의견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세미나에 참가한 다양한 센터의 연구원들이 본 주제와 해당 지역의 연관성에 대한 질의를 통해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시간이 되었다.

글 | 김승교(학술기자단, 연구연수생 1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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