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세계경제포럼과 개신 필요한 자본주의2022-02-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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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세계 도처가 아우성이다. 코로나19 이후 '소리없는 아우성'이 거칠게 표출하고 있다. 지역봉쇄 마스크쓰기 백신패스 도입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시끄럽다. 자영업자들의 항의도 거세다.

전세계가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지만 글로벌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최상위 국제기구인 유엔은 구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국제사회의 여론을 주도한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정치인 기업인 지식인 등을 초청해 토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무력한 유엔을 대체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세계의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심 행세를 한다.

WEF는 위로부터의 세계화 아래 친(親)자본주의 노선을 따르면서 세계정치경제에 관한 이슈선점과 담론제시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인류역사의 교차로에 서 있다'라는 식의 거대담론 아래 4차산업혁명, 세계화4.0, 자본주의 개혁, 지속가능성 등 세기적 이슈를 주제로 삼는다. 스위스의 다보스라는 조그만 스키타운에서 국가정상을 비롯한 정치 경제 지식 엘리트들이 네트워크를 다질 수 있는 친교의 공간을 제공한다.

글로벌 리더십 부재 시대의 다보스포럼

올해 WEF는 지난해에 이어 온라인으로 1월 17~22일 개최됐다. 뉴욕타임즈 표현대로 '다보스 없는 다보스'다.

이번 WEF에는 안토니우 구데호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 중국 시진핑 주석, 인도 모디 총리,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등이 원격으로 참가했다. 코로나19 이후 백신평등, 에너지전환, 기후개선, 지구공급망, 자연친화적 경제체제, 거버넌스, ESG경영 등 굵직한 주제를 내걸었다.

지금까지 WEF는 현안에 대한 중대한 문제제기에 비해 정부나 기업의 실천에 관심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아난드 기리드하라다스(Anand Girdharadas)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세계 많은 국가를 부패하게 만들고 나쁘게 이끌어온 이른바 다보스계급을 위한 로비 장소"라고 혹평한다. 부·권력을 가진 다보스계급의 배타적 이해관계를 전세계 공동의 가치로 교묘하게 세탁하는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발이다.

2022 WEF에서 안토니우 구데호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년 동안 세계는 잔혹한 진실을 마주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코로나19를 X-레이에 비교했다. "세계 모든 곳이 오류와 거짓으로 쌓여있다. X-레이는 우리가 만든 사회의 골격이 부서질 정도로 심각한 균열이 나있음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여줄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할 공공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비판은 신랄하다. 인류는 같은 배에 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면 일부는 고급 요트에 타고 있고 일부는 떠다니는 잔해에 매달려 있다. 선진국은 백신이 남아돌고, 후진국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최빈국이 갚아야 할 외채 이자만 350억달러로 2020년보다 거의 50% 늘어났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규모 재정지출의 여력이 없어 불평등이 바이러스처럼 오랫동안 팬데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최근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40여년 동안 상위 1% 부자들이 전세계 인구 하위 50%보다 2배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이러한 빈부격차 악화는 오래된 계층 젠더 인종 사이의 불평등에 바탕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은 건강과 교육 기회의 박탈을 통해 악순환을 일으킨다.

돌아보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도전 아래 부단한 교정과 쇄신을 통해 내구력을 키워왔다. 정부나 시장이 수시로 해결사로 나섰다. 그러나 큰 정부와 높은 세금으로 복지를 지향한 정부개입주의를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으로 축적을 도모한 자유시장주의가 대체하면서 오늘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과거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프로레타리아독재라는 논리 아래 민주주의 절차가 무시됐고 평등의 이상도 중앙계획의 경직성으로 인해 하향평준화로 치달았다. 북구권의 사회민주주의가 정부와 시장 사이의 조화를 통해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동시에 이끌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협의 민주주의

케인즈가 '기린의 우화'에 빗대 설파했듯이 자본주의는 과도한 경쟁 탐욕 낭비라는 결함이 있다. 사회성원들이 공생할 수 있는 혁신과 개조가 필요하다.

필자는 공동체적 비전을 지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der capitalism)와 협의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의 결합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계급 지역 세대 젠더를 넘어 사회갈등을 줄일 수 있다. 후자는 권력독점과 승자독식을 넘어 정치주체들 사이의 협치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개신(改新)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