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할랄 인증제


지난 20년간 말레이시아에서 음식소비와 관련해서 발생한 두드러진 변화의 하나는 JAKIM(말레이시아 이슬람진흥부)이 발급하는 할랄(halal: 이슬람법에서 허용한다는 뜻)인증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형 쇼핑몰의 푸드코트(food court), 고급호텔의 레스토랑,패스트푸드점에 할랄인증이 부착되어 있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으며, 슈퍼마켓에 진열된 대부분의 가공식품과 육류에 할랄로고가 표기되어 있다<상단 그림1. 말레이시아 이슬람진흥부의 할랄 로고>.

JAKIM이 관장하는 할랄인증제는 1994년에 도입되었지만, 이 제도의 법적 배경은 1972년에 제정된‘상품표시법’(Trade Descriptions Act)에 1975년 시행령으로 첨부한 ‘할랄 표현의 사용’과 ‘음식의 표지’에 대한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조항은 할랄식품의 정의를 제시하고, 할랄식품을 취급하는 생산자, 상인, 공급자는 그 식품에 할랄이라는 표지를 부착할 것을 의무화 하였다. “할랄식품이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a)샤리아(이슬람법)에서 무슬림이 먹지 못하도록 금지시킨 동물 또는 샤리아에서 규정한 방식에 따라 도살되지 않은 동물의 어떤 부분도 포함하지 않아야 하며, (b)샤리아에서 불결한 것으로 간주한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아야 하며, (c)샤리아에서 불결한 것으로 간주한 어떤 것을 취급하였던 도구가 할랄식품의 가공과 제조과정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d)위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식품과 제조과정 또는 보관과정에서 접촉하거나 가깝게 놓여 있어서는 안 된다”(Trade Descriptions[Use of Expression “Halal”] Order 1975, Section 3). 위의 시행령에 의해 할랄식품에 할랄표지를 하는 것이 의무화 되었으며, 할랄식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할랄표지를 하는 경우는 허위 표지에 해당하여 ‘상품표시법’에서 일반적으로 규정한 허위 상품표지에 대한 처벌의 적용을 동일하게 받게 되었다.

JAKIM의 할랄인증제는 ‘상품표시법’에서 일반적이고 추상적으로 제시되었던 할랄식품의 기준을 보다 구체적인 조항으로 명시하여 인증 발급의 지침으로 활용하였다. JAKIM의 새로운 할랄식품 기준은2004년에 말레이시아표준원(Department of Standards Malaysia)이 제정한 MS1500(할랄식품의 생산, 취급, 저장에 관한 일반 지침)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가표준제의 일부가 되었다. 샤리아에서 금지된(하람: haram) 음식재료로는 돼지, 개, 육식동물, 맹금류 등이 해당하며, 동물의 피, 이슬람 방식에 따라 도살되지 않은 동물의 사체도 금지의 대상이다. 해산물, 식물, 버섯과 미생물(박테리아, 곰팡이 등), 음료의 경우에는 독이 있거나, 취하게 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비가 허용되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샤리아에서 금지된 음식재료에 이슬람적 방식에 의해 도살되지 않은 동물의 사체도 포함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따라서 소, 양, 닭과 같이 무슬림에게 식용이 허용되는 동물의 경우에도 이슬람적 도살을 거치지 않으면 하람이 된다. ‘이슬람적 도살’(zabiha)의 기준과 관련해서는 도살자가 반드시 무슬림이어야 하고, 동물의 목젖 바로 아래 부분에서 식도와 기도, 동맥과 정맥을 날카로운 칼로 단숨에 베는 방식으로 도살이 행해져야 하며, 도살자는 도살 직전에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bismillah Rahman Rahim)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도살되는 동물은 도살 직전에 살아 있고 건강해야 하며, 도살을 위해 동물을 기절시키는 방법(stunning)은 권장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전제 하에서 허용된다. 도살 전에 충격기술을 사용할 경우에 가축총(captive bolt stunner)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으며, 전기충격은 허용되는데 동물의 종류별로 허용되는 전류량과 감전시간을 규정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닭의 경우에는 0.25-0.50A의 전류를 3-5초 동안 가하고, 소의 경우에는 2.00-3.00A의 전류를 2.5-3.5초 동안 가한다는 식이다.

할랄인증제의 도입이 말레이시아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고, 무슬림 국가와 비무슬림 국가를 포함해서 전 지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할랄인증제의 특징적인 측면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인증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며, 대부분의 다른 국가에서는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이나 무슬림 조직에서 할랄 인증을 발급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할랄인증제가 전 지구적으로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1970-80년대 이후 육류와 가공식품 시장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됨으로써 무슬림 국가와 비무슬림 국가 사이의 식품교역이 활발해졌고, 무슬림이 소비하는 식품의 상당한 부분을 비무슬림 식품업체가 생산한 수입제품이 차지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수입되는 신선한 육류나 육류 가공제품에 대해 할랄식품의 조건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할랄식품을 수출하는 기업체의 경우에도 무슬림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공신력 있는 할랄인증의 획득이 필요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할랄인증제의 도입은 이러한 글로벌한 시장 요인 뿐 아니라 국내적 요인과도 연관된다. 국내적 요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소비의 할랄화와 종족정치의 연관성이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세 종족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97년을 기준으로 할 때 말레이가 약 52%, 화인이 약28%, 인도인이 약 8%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의 종족관계의 특징적인 측면은 종족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이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말레이=무슬림, 화인=비무슬림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매우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1970년대 이후 할랄표시의 법제화와 할랄인증제의 도입에 나서게 된 것은 말레이-무슬림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말레이와 화인 간의 경제적 격차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이 도입되어 그 영향으로 말레이의 도시 이주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화인이 다수를 점하고 있던 도시에서 이들은 이주 초기에 무슬림 소수집단의 위치가 되었으며, 비이슬람적 도시환경에서 신뢰할 수 있는 할랄 음식의 확보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또한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말레이 도시중산층에 의한 육류와 가공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외식을 하는 기회가 빈번해짐으로써, ‘도시적 음식’에 대한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할랄 식품의 공급이 시장에 요구되었다.

1994년에 할랄인증제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지 십여년 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시장이 할랄인증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할랄인증제의 도입 초기에 가장 먼저 반응한 기업체들은 국내의 화인소유의 식품업체, 국내에 생산시설을 둔 다국적 식품기업(대표적인 예로 Nestle Malaysia), 그리고 다국적 패스트푸드점(맥도날드, 켄터키치킨, 피자헛 등)들이었다. 이들이 할랄인증을 신청한 것은 말레이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한 영업전략의 일환이었다. 비무슬림 소유의 기업가들이 그들의 음식제품에 대한 말레이의 신뢰를 얻는데 정부가 발급하는 할랄인증은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가공식품의 경우 할랄인증의 부착은 비무슬림 고객을 잃게 되는 위험부담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무슬림 소유의 가공식품업체로서는 무슬림 소비자와 비무슬림 소비자를 함께 그들 제품의 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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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맥도날드 입구에 부착된 할랄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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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슈퍼마켓 진열대에 있는 커피병 뒷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할랄 로고

JAKIM으로부터 할랄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식품의 가공, 포장, 운반, 저장의 전 과정에서 할랄의 기준이 철저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가공식품업체에서 할랄인증을 신청할 경우 해당 식품의 제조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할랄임을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가공식품업체가 생산하는 케첩의 재료에는 변형옥수수전분, 콩 숙성액, 콩 단백질액, 설탕, 소금, 나트륨 벤조산염, 타피오카로 만든 캐러멜, 조미료의 8가지가 포함되었는데, 이들 모든 재료에 대해 공급자의 회사명과 할랄인증이 요구되었다. 옥수수전분, 콩, 설탕, 소금과 같이 상식적으로 할랄식품으로 간주되는 대상의 경우에도, 그것이 자연 상태가 아니고 가공과정을 거쳤을 경우에는 하람 물질이 포함되거나 오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할랄인증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내산재료 뿐 아니라 수입재료의 경우에도 그 재료가 할랄임을 서류상으로 입증해야 한다.

할랄인증을 신청한 식당의 경우에도 요리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가 할랄임을 입증하여야 한다. 할랄인증이 필요없는 날 것의 채소와 생선을 제외하고, 모든 육류와 가공식품재료(소스, 케첩, 식용유, 곡물가루 등)에 대해서는 할랄인증을 받은 것만을 사용한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한다. 식당에 대한 JAKIM의 실사과정에서 모든 음식재료에 하람 물질이 포함되었는지 여부를 직접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들 음식재료에 대한 할랄인증서 심사로 대체하는 방식을 취한다.

현대의 가공식품에는 자연산 재료 뿐 아니라, 이를 화학적으로 또는 생명공학적으로 처리한 식품첨가제가 보존기간의 연장이나, 맛, 질감, 색깔, 영양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성 재료에서 추출된 식품첨가제로 특히 젤라틴과 효소(enzyme)가 가장 민감한 대상이다.

젤라틴은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우유, 과일주스, 케이크, 과자, 젤리, 껌, 푸딩, 잼 등의 식품과 의약품의 캡슐 등에 사용된다. 젤라틴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원료는 돼지가죽, 소가죽 그리고 동물의 뼈이다.이 중에서 돼지가죽이 값이 저렴하고 재질이 좋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돼지가죽을 원료로 해서 만든 젤라틴이 들어간 식품은 당연히 할랄로 간주되지 않으며, 소가죽이나 소뼈를 원료로 했을 경우에도 이슬람적으로 도살되지 않은 소를 사용했다면 그 젤라틴 역시 하람으로 간주된다. 1980년대에 말레이시아의 소비자단체인 CAP(Consumers Association of Penang)가 Nestle Malaysia를 상대로 이들의 제품인 토마토케첩, 커피분유, 라면 등에 원료가 의심스러운 젤라틴이 들어있다고 고발하고, Nestle Malaysia가 이를 부인하는 사건이 신문에서 쟁점화 됨으로써 젤라틴이 들어간 식품에 대한 무슬림 소비자들의 우려가 고취되었다.

효소는 치즈, 설탕, 전분, 식용유, 빵, 과일주스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식품 제조시간을 단축하고, 맛,색깔, 질감을 향상시키는데 큰 효과를 발휘해서 현대의 식품산업에서 필수불가결한 재료로 인정되고 있다. 효소는 동물이나 식물로부터 추출되는데, 최근에는 생명공학기술을 사용하여 만든 미생물효소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이 중 동물효소가 문제가 되는데, 젤라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돼지의 내장에서 추출되었거나, 이슬람적 도살을 거치지 않은 동물의 내장에서 추출된 효소는 허용되지 않으며, 그 효소를 사용해서 만든 식품은 할랄로 간주되지 않는다. 미생물효소는 일반적으로 할랄효소로 간주되지만 이 경우에도 미생물을 배양하는데 쓰인 물질이 무엇인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2001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아지노모토가 돼지에서 추출된 효소를 사용했다는 신문기사가 나와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Bactosoytone이라고 하는 재료인데, 이는 발효과정을 촉진하는 박테리아를 배양하는데 쓰이는 영양물인 콩 단백질을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한 펩신(pepsin)으로 분해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효소의 원료 뿐 아니라 효소의 배양물까지 할랄식품을 규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조건이 되었다.

가공식품에 대한 말레이시아 이슬람진흥부의 입장은 식품의 제조과정에서 어떠한 가공의 절차를 거치든, 즉 열을 가하거나, 건조시키거나, 용해시키거나, 화학약품을 가하더라도 원래 불결한 물질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돼지 또는 이슬람적 도살을 거치지 않은 동물의 신체 일부분을 원료로 해서 만든 젤라틴이나 효소는 제조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하람으로 간주된 것은 원재료의 불결함이 남아 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샤리아에서 금지된 원료가 포함되었을 경우 어떠한 가공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할랄식품이 될 수 없다는 이슬람진흥부의 규정은 이러한 법적 해석의 논리 위에 서있다.

글/그림. 오명석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