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인간적인 태형(笞刑)


우리의 폭력에 대한 시선은 차별적이다. 인간을 감옥에 가두는 일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명국가의 처벌이라 간주하면서, 왜 이슬람 샤리아(Syariah) 법에 의한 태형은 원시적이고 반문명적이며 반인권적 처벌이라 혐오하는 것일까? 어떤 문화권에서는 인간의 신체 자유를 속박하여 가두는 일이 오히려 더 엽기적인 사실인데 말이다. 인도네시아 전통 관습법 하에서는 “인간을 가둔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도망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사람을 가두거나 묶어두는 일은 있었어도 죄값으로서의 구금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이거나, 햇볕 아래 일정 시간 묶어두거나, 강제혼인을 시키거나, 벌금을 물리고 혹은 공동체에서 축출하는 일은 있었어도 말이다.

어쨌든 다시 태형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인도네시아 공화국 성립 후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형법에 관한 한 관습법과 종교법의 적용을 금하였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공화국 성립 이후 범죄자에 대한 형벌의 형태는 식민 모국 화란으로부터 이식된 근대법을 따랐다. 그러던 것이 2001년 아체(Aceh) 지역을 이슬람법에 의한 특별자치주로 규정하게 되면서, 2005년부터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아체 지역에서만큼은 도박, 간음, 음주 등의 범죄에 대해서 샤리아 법에 의한 형벌이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외부에서 보자면, 멀쩡하던 현대국가가 갑자기 문명사적으로 퇴행의 행보를 보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샤리아 법에 의한 태형이 아체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던 2005년 6월24일, 인도네시아 각지의 언론들과 외신들은 카메라를 앞세워 아체 지역을 취재하기에 열을 올렸다.그 날 아체의 비레우엔(Bireuen) 지역에서는 2천여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도박 혐의가 확정된 15명에 대해 6회에서 10회 사이의 태형이 집행되었다.

20130510202312_64898

<그림1> 아체 지역의 태형

그 날 필자도 하루 종일 태형 관련 TV 보도를 시청하였다. 아체가 오랜 독립 염원을 포기하는 대신 이슬람법에 의한 특별자치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더니, 결국은 외부세계가 이해하기 힘든 고립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싶은 안타까움과, 사람이 근육을 직접 써서 남을 때리는 방식으로 처벌하는 그 원색적인 장면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묘하게 흥분하여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태형의 집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의 호기심과 흥분은 타문화에 대한 경외와 감동으로 변해갔다, 아체에서 처음 시행된 그 날의 태형은, 죄인을 공개적으로 무자비하게 채찍질함으로써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사가 아니라,오히려 잘못한 형제를 다시 공동체의 품으로 안내하기 위해 세심하게 고안된 의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20130510202408_87601

<사진2> 도박죄를 확정받은 자에게 태형이 집행되고 있다.

20130510202448_46287

<사진 3> 여성이 태형을 받을 때는 앉은 자세이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두 가지이다. 우선 태형 집행 과정에서 가장 배려되는 부분은 형을 받는 사람의 건강이다. 그 사람이 태형을 견딜 만큼 건강한지 그리고 태형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게 되지는 않을지를 세심하게 고려한다. 그래서 피처벌자는 태형 이전에 종합병원의 검진을 받으며, 태형 직전과 중간 그리고 이후, 참관 의사로부터 또 건강상태를 체크 받는다. 의사의 사전 진단 결과 건강 상태가 염려스러우면 태형의 집행은 연기되며, 혹시라도 태형 도중 의사에 의해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남은 태형 횟수는 이후 건강이 좋아지면 추후 집행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피처벌자는 집에서 태형장으로 오갈 때 의료 팀이 동승하는 앰뷸런스를 이용한다. 한편 피처벌자는 지급받은 흰색의 새옷을 입게 되는데 이는 태형으로 인해 출혈이 생길 경우 쉽게 알아채기 위해서라고 한다. 피 흘리는 사람을 계속 채찍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태형의 집행은 공동체 성원 간의 유대와 결속을 유지하고 저해하지 않으며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태형 집행 이전에 이 행사를 참관하러 온 지역 유지들은 회개를 요구하는 종교적 연설을 연달아 함으로써 전체 행사의 의의를 주지시킨다. 이어서 피처벌자는 흰옷을 입고 태형을 위해 준비된 단상에 올라가 사방에서 모여든 구경꾼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얼굴은 물론 온몸을 가린 태형 집행인으로부터 맞게 된다. 태형 집행인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이러한 처벌로 인해 때리는 자와 맞는 자 간에 개인적인 원한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형은 법규에 의해 그 재질과 길이, 두께 등이 정해진 채찍을 피처벌자의 등쪽 몸체에 가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휘두르는 각도와 강도까지도 법률로 정해져 있어 처벌이 규격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 감정이 처벌에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렇게 채찍으로 맞고 나서 피처벌자는 다시 군중을 향해 공손한 인사를 남긴 후 단상을 내려온다. 이 때 단상 밑에서 피처벌자를 맞이하는 이는 그 지역의 유지급 인사이다.필자가 목격했던 아체의 첫 태형 시행일에는 아체의 주지사 대행과 그 지역 군수, 검사 등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 지역의 유지들은 피처벌자를 포옹하고 뺨을 비비는 인사를 나누었고 이어서 매우 호화롭게 장식된 선물바구니를 피처벌자에게 선물하였는데, 그 내용물은 신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뜻에서 이슬람의 성전인 코란과 기도예배에 사용되는 방석이었다. 태형을 지켜보는 군중들도 우~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냈었기도 했지마는 태형을 받고 단상을 내려오는 피처벌자에게 박수로써 격려하고 환영하는 모션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피처벌자 중에는 단상을 내려와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미소짓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신은 위대하다”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이처럼 필자가 목격한 아체 지역의 태형은 공동체의 주민과 어르신이 한데 모여 그릇된 행동을 한 형제를 이슬람 공동체로 다시 품어내기 위해 행하는 한바탕 의례였다. 죄를 짓고 형을 받은 후 전과자로 낙인 찍혀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형벌체계가 아니라, 공동체의 꾸짖음 이후 다시 공동체 성원으로의 복귀가 허용되는 형벌체계. 그래서 그 형제가 다시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의례는 지역 유지의 종교적 설교로 시작되고 형벌은 피처벌자의 신체적 건강과 영혼의 구제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또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유지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알고조(algojo)라고 불리는 태형 집행인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2005년 6월 이후 2012년 초까지, 2백여 명의 남녀가 아체에서 태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아체 지역의 태형 집행은 난관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첫째 이유는 태형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형벌이라는 거센 비난 여론 때문이고, 둘째는 예산상의 이유 때문이다. 피처벌자를 위한 건강 검진, 앰뷸런스 비용, 형장 설치 등등 단 한 번의 태형 집행을 위해 시도단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 예산이 8백 70만 루피아(한화 1백만 원)에 이르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반면 이슬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측에서는 당국에 대해 왜 이슬람 형법의 시행에 미온적이냐고 항의하는 형국이다. 예산의 문제로, 대외적 시선 때문에, 그리고 분쟁해결을 위해서는 종교법보다는 관습법적 전통을 더 선호하는 주민의식 때문에 이슬람 형법이 확고하게 시행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하긴 2009년 아체 자치주의 지방의회는 좀더 강화된 이슬람 지방형법(Qanun Jinayat)을 통과시켰는데, 그것은 태형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투석을 하도록 하는 형벌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여론 때문에 아체 주지사는 이 법에 서명하지 않았고 이 법은 아직 시행된 적이 없다.

필자는 아체 지역 이외에서 집행된 태형의 과정들을 목격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슬람의 형벌 방식 일반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지만, 최소한 아체 지역에서 집행되고 있는 위와 같은 디테일의 형벌을 과연 비인간적인 처사로서 비난해야 할지엔 회의적이다. 한 사람은 온몸의 힘을 모아 남을 때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남부끄럽게도 퍽퍽 소리나게 남 앞에서 맞고, 그래서 평생 수모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한 인간을 협소한 공간에 가두고 그 가족의 생계까지 곤란하게 하며 또한 서류상에 빨간줄 긋는 방식으로 전과자 꼬리표를 달아 한 인간을 공동체로부터 배제해 버리는 근대적 형벌에 비해 더욱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최소한 아체의 태형은 범죄자를 가족으로부터 격리시키지도 않고, 태형 이후 범죄자가 돌아갈 공동체는 확보해 둔다.

 

글/사진. 조윤미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서울대 동남아센터 신흥지역연구단 공동연구원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