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물의 신, 나가(NAGA)를 경험하다


 최경희(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태국은 나에게 첫 해외여행지이다. 아마 1999년일 것이다. 요즘은 이른 나이에 해외여행을 경험하는 시대이지만,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야 BK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첫 해외여행을 나간 것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다. 그 때 그 여행에서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두리안’이라는 열대과일의 경험이다. 이 과일을 처음 한 입 먹고 토해내면서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기억이다. 그러나 어느새 인도네시아 지역전문가로 살아오면서 인니를 포함하여 다른 동남아 국가들을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출장이나 현지조사를 다녀오면서, 두리안을 볼 때마다 미소가 배어 나오니깐 말이다.

이번 태국 여행은 한 학회에서 진행하는 컨퍼런스의 발표자로 참석하게 되면서 계획된 것이다. 그리고 학회 참석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또 하나의 연구소에서 태국 고대왕조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공동 현지조사를 기획한다는 것을 알고, 인도네시아 지역연구자인 나에게 태국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올까 싶어서 신청을 했다. 그리고 2009년 떠났던 미얀마 공동 현지조사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도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연구과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지조사이기 때문에 이 여행은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이 가벼움에 약간의 무게감을 느끼게 된 것은 이번 2월 뉴스레터로 현지조사에 관한 짧은 여행기를 써야 한다는 미션 때문이다. 그래서 태국지역전공자도 아니고, 어떻게 테마가 있는 여행기를 쓰나 고민을 하던 중, 읽겠다고 사두었던 『물의 신 나가: 태국과 서태평양의 문화적 기원』(쑤멧 춤싸이 저/노장서·김인아 공역, 솔학, 2014년)이란 책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그래! 여행기의 테마로 나가(Naga)를 정해보자’라는 맘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이해를 건축물을 통해 파악하는 것으로, 읽으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태국에 가면 이 나가(Naga)를 제대로 구별해 낼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웬일인가. 학회 컨퍼런스 행사장 곳곳에도 나가(Naga)의 현대적 모형들이 있지 않는가. 그것을 보았을 때 나가(Naga)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태국 문명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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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현대 사원 건축물에서 나가를 찾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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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고대 유적지 사원 속의 나가

나가(Naga)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번 태국여행에서 잊지 못할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이번 태국여행은 1999년 첫 태국 여행에서 알 수 없었던 태국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나는 무엇보다 크게 느낀 태국 음식의 맛이다. 너무 맛있다.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태국음식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느껴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행운이다. 치앙마이 북부의 전통식사인 칸톡(Khantok)도 좋지만, 운 좋게 먹어 보게 된 태국 북동부의 소수종족의 하나인 이산(Isan) 종족의 음식 맛이다. 그리고 방콕에서는 출랑롱쿤 대학가의 맛집, 겉모습은 진짜 허름한 생선전문 요리집,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마지막으로 먹었던 방콕 외곽의 오토코(Otoko)라는 전통시장에서 먹은 음식 맛이다. 나는 평상시 인도네시아를 연구하면서 인도네시아 음식 맛을 나름 자랑으로 여겼는데, 솔직히 이번 여행 이후 태국 음식 맛에 더 후한 점수를 주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동남아이지만 태국과 인도네시아 음식 맛이 왜 차이가 나는지를 궁금하게 여기게 되었다. 마침 현재 내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 인도네시아 외식산업, 크게는 음식소비문화에 대한 연구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서 느낀 체험적인 질문은 계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열대의 다양한 식재료의 풍부함과 다양한 종족의 전통과 관습이 어우러져 수천 수백 가지의 요리로 드러난 태국의 음식은 태국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고 느꼈다.

다른 하나는 입헌군주국 태국의 역사적 깊이이다. 최근 접하게 된 태국 관련 기사는 태국사회의 혼돈과 갈등으로 태국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곤 하였다. 하지만 태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서 태국 불교의 정신 국민의 불심과 토착문화, 그리고 그 속에 있던 왕조 문명이 갖는 역사적 힘이 쉽게 사라지지도 쉽게 변형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현재 라마 9세는 차크리 왕조의 시작인 라마 1세로부터 기원한다. 물론 라마 9세인

푸미폰 국왕의 나이와 후계구도의 문제로 이 왕조의 운명이 밝은 것은 아니지만, 수천의 역사를 살아온 시암(Siam) 민족은 이러한 또 하나의 위기도 잘 극복하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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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도이 수텝(Doi Suthep)사원 입구의 나가

수코타이(Sukohotai, 1238-1438) 왕조의 유적지인 마하탓 사원(Wat Mahathat)도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수코타이 역사공원의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펼쳐진 전경을 나는 상상도 못했다. 멀리서 이 연못 앞으로 이끌려 오는 동안 ‘와 정말 아름답다’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이 연못을 보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많은 이들에게 있을 법하다. 당연 이곳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적지로 등재된 곳이다. 당시 캄보디아의 앙코르 제국과 힘을 견줄만한 왕조였고, 람캄행왕(Ramkhamhaeg)은 태국의 문자를 만든 왕이다. 수코타이의 번성기와 함께 한 왕이다. 이 유적지를 둘러볼 때 많은 관광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것을 본 어느 역사학자는 람캄행왕의 정신세계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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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4> 수코타이(Sukohotai) 유적지인 마하탓(Wat Mahathat) 사원

또 한 번 감탄했던 곳이 아유타야(Ayuthaya 1351-1767) 왕조 유적지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태국 북동부인 치앙마이부터 중부인 방콕까지 여행을 하면서 5세기부터 현재 왕조까지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대륙부 동남아 국가들이 인도차이나 반도 안에서, 그리고 외부와 문화적 영향을 서로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다시 실감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유타야 유적지 중에 왓 차이왓타나람(Wat Chaiwattnaram) 사원은 한낮에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을 지나고, 좀 걷기 괜찮을 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석양이 질 때까지 고대유적들과 호흡하기에 딱 맞는 곳이었다. 특히 앙코르 와트식 사원, 스리랑카식 사원, 그리고 아유타야 고유한 양식의 사원이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 여행을 통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을 왜 가보야 하는지를 절감하였다. 태국 고대 왕조 곳곳에 크메르 양식의 사원이 상당히 많이 건축되어 있었기에 그 시기 각 왕조의 사원 건축양식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다시 부각되어 인식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동남아가 아세안 공동체를 만드는데 있어 아세안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도전 앞에서 과거 역사는 현재에 있어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작용될 수 있도록 역사를 어떻게 재해석해 들어갈 것인가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 또한 느꼈다.

마지막으로 나가(Naga)의 의미를 정리해본다. 이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 정리한 것이다. 문명을 물 기반 문명, 육지 기반 문명, 그리고 수륙양서 기반 문명으로 분류하였을 때, 물의 상징인 나가(Naga)는 물의 기원과 물 기반 문명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물 기반 문명의 원천이고, 태국은 그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심원 모양의 대륙과 바다로 구성된 우주 모델에서, 바다와 육지들의 융기와 침하를 나타내는 물결들은 물의 상징인 나가와 잘 들어 맞는다. 이 물의 상징은 다양하게 변화된 형태로 아시아 해안 전역에서 일상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다. 그 형태는 순수한 수행적 형태로부터, 태국의 ‘쌩(sang)’처럼 나가와 씽(singh. 사자)이 협쳐진 가공의 육지기반의 생물, 그리고 본래 수생적 특징을 지닌 뱀이지만, 작은 다리와 날개를 가지고 수륙양서로서 날기도 하는 중국 및 일본의 용에 이르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현재의 태국에서도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나가(Naga)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나가는 뱀을 의미한다. 태국어로는 ‘낙’으로 발음된다. 태국에서는 의례 또는 건축양식에서 다양하게 나가(Naga)가 사용된다. 지면 관계상 나가의 복잡한 역사적 제례적 상징적 의미들을 일일이 기술할 수 는 없다. 분명한 것은 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우주적 사고, 힌두교의 영향, 불교의 의례, 왕권, 토착문화, 강과 바다의 물 기반 문명의 특징 등을 나가(Naga)를 통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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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아유타야 유적지 중에 왓 차이왓타나람(Wat Chaiwattnaram)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