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귀환: 갈림길에 선 베트남


2016년 연임에 성공한 응우옌 푸 쫑(Nguyễn Phú Trọng) 베트남공산당 총비서는 유례없이 강도 높은 반부패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이것은 2007년에서 2013년 사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공산당 존립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당내 당국가발전파 세력이 당을 구하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국영부문 개혁의 일환이다. 베트남 경제는 지금 중진국 함정에 빠져 그대로 주저앉느냐 아니면 한 단계 질적 도약을 이루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베트남 경제의 중장기 전망은 현재 진행되는 당국가발전파 세력의 부패 척결을 비롯한 국영부문 개혁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2031

김용균 (이화여자대학교)

호찌민시 마지막 금싸라기 땅

베트남의 도로명은 대부분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이를테면, 하이바쯩(Hai Bà Trưng) 길이 그렇다. 호찌민시 1군에서도 가장 번화한 벤응애(Bến Nghé) 지구는 그 오른 편으로 뱀처럼 구불거리며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사이공강을 바익당(Bạch Đằng) 선착장에서 접하고 있는데, 하이바쯩 길은 이 곳에서 사선 형으로 뻗은 주요 도로 중 하나이다. 호찌민시 중심부를 여기서부터 북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이 도로의 이름은 베트남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아는 쯩(Trưng) 자매를 뜻한다. 쯩 자매는 서기 40년, 당시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던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중국 관리들을 쫓아내고 3년간 베트남의 독립을 지켜낸 ‘베트남을 빛낸 위인들’이다. 한편, 통일궁에서 사이공 동물원까지 벤응애 지구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가로지르는 또 다른 중심 도로의 이름은 레주언(Lê Duẩn) 길이다. 레주언은 호찌민의 뒤를 이어 베트남 공산당의 ‘넘버원’에 올라 1986년 세상을 뜰 때까지 무려 27년 동안 베트남 1인자 자리에 있으면서 천하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연초 어느 저녁 무렵 통일궁 정문에서 북동 방향으로 레주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 새해를 축하하는 베트남 인사말 ‘쭉믕남머이’(Chúc Mng Năm Mi)가 빨갛고 파랗고 노란 네온사인으로 대낮처럼 번쩍거리는 건물 입구를 만나게 되는데, 이 눈부신 곳이 바로 1999년 문을 연 고급 복합 쇼핑몰 다이아몬드 플라자(Diamond Plaza)이다. 바로 길 건너 남쪽으로 노틀담 성당을 마주하고 있는 이 일대는 한국으로 치면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명동의 네이처리퍼블릭 부지쯤 된다. 이 노른자 땅 위에 들어서 있는 다이아몬드 플라자를 지나 그 바로 옆으로 시선을 옮기면 레주언 길과 하이바쯩 길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4천8백여 평방미터의 부지가 나타난다. 평방미터 당 시세 최소 1만8천 달러(약 2천만 원)로 추정되는 이 땅은 놀랍게도 아직 공터로 남아있다. 호찌민시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đt vàng)으로 알려진 이 곳은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곳은 원래 라베뉴(Lavenue) 투자회사가 개발권을 따내 최고층 36층짜리 건물을 포함한 호텔-아파트-쇼핑몰 복합 단지인 라베뉴 크라운(Lavenue Crown)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1년 호찌민시 인민위원회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은 이 사업의 진척 속도는 2018년까지 공사를 마치겠다는 애초의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존 건물을 헐고 토양 조사를 비롯한 부지 준비 작업을 하는 데만 2년 반이 넘는 금쪽같은 시간이 훌쩍 지났고, 2013년 말 마침내 건축 설계가 완성되었지만 민관 합자회사인 이 투자회사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문제들로 인해 실제 착공은 계속 지연되어 다시 2년 반을 허비했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허무하게 날리던 2016년 어느 날, 이 사업에 정부 감사가 시작된다.

LAVENUE CROWN 조감도(원래 2018년 완공예정)
출처: Livinginasia co
LAVENUE CROWN 부지(아직 착공조차 안 된 상태에서 베트남에서 가장 비싼 땅인데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
출처: Livinginasia co

라베뉴 크라운 스캔들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감사가 시작된 지 1년 반만인 지난 2018년 12월이다. 정부감찰국의 발표에 따르면 호찌민시 인민위원회는 경쟁 입찰 없이 라베뉴 투자회사에 시세에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로 토지를 임대함으로써 “국가 재산에 손실과 낭비를 초래한”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 이에 공안부는 응우옌 타인 따이(Nguyễn Thành Tài) 전 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4명의 전직 호찌민시 고위 공무원들을 구속 기소한다. 9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땅을 3천만 달러에 넘겼으니 그 차액인 6천만 달러(약 7백억 원)만큼 시 공무원들과 투자회사가 서로 나눠먹었다는 말이고, 그만큼이 고스란히 국고 손실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국가경제에 끼친 손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베뉴 투자회사가 애초에 이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정도의 대규모 개발 사업에 필요한 경영 능력과 자본조달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라베뉴 투자회사는 “시장화된 국가”(marketized state), 혹은 “상업화된 국가”(commercialized state)의 화신이다(Pincus, 2015). 원래 시정부 소유 기업인 호찌민시 주택공사와 중앙정부의 산업통상부 소유 국영기업들이 50%씩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였는데, 사업승인이 나기 직전인 2010년 시정부 지분 일부와 산업통상부 지분 전부가 민간 투자자들에게 매각되면서 민관 합자회사로 변신하였다. 결국 금싸라기 땅을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시정부가 자신이 일부 소유하고 있는 합자회사에 개발 특혜를 부여한 것이다. 이 투자회사의 민간 투자자들이 시정부 고위인사들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을 것이며 사업승인을 예상한 가격에 회사 지분을 인수했을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산업통상부 관료들 역시 지분 매각을 통해 예상 개발이익의 떡고물을 이미 챙겼을 것이다.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대형 사업권을 따냈지만 라베뉴 투자회사는 불행하게도 이 사업을 실행할 경험과 능력은 없었다. 그 결과 금싸라기 땅이 10년 가까이 공터로 썩고 있는 것이다. 고속의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넥스트 차이나’로 최근 크게 각광받고 있는 베트남, 그중에서도 경제수도 호찌민시에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많은 건설 프로젝트가, 수주 과정의 부정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잘 마쳐져 호찌민시의 천정은 계속 높아지고 둘레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프로젝트가 사업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엉뚱한 개발업자의 손에 들어가면서 라베뉴 크라운과 같이 중심부 한복판의 공터로, 또는 사이공강변 1군의 흉물인 사이공 원(Saigon One)처럼 뼈대만 올라간 채 버려진 유령 건물로 남아있다. 이런 경우가 호찌민시 중심부에만 최소 18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패 관료들이 돈 잔치를 벌이며 축낸 국고로 인한 피해, 그리고 개발의 지체로 인한 기회비용은 고스란히 베트남 시민들의 몫이다.

SAIGON ONE 조감도(2007년 착공)
출처: Livinginasia co
SAIGON ONE 현재(2012년 이후 이 상태)
출처: Livinginasia co

 

경제와 함께 성장한 부패: 베트남 부패공화국

라베뉴 크라운 스캔들로 응우옌 타인 따이 전 부위원장이 구속되자 호찌민시의 대부(godfather)로 알려진 레 타인 하이(Lê Thanh Hải)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레 타인 하이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간 처음에는 시인민위원장으로, 나중에는 시당위원회 비서로 호찌민시의 개발 붐을 총지휘 했던 인물이다. 따이 전 부위원장이 라베뉴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던 2011년 당시에도 레 타인 하이는 막강한 정치국(politburo) 위원이자 호찌민시 당 비서로 그 위세가 당당했다. 하이 전 당 비서의 충직한 부하 중 한 명인 따이 전 부위원장마저 호찌민시의 눈부신 성장에 빨대를 꽂아 자기 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데, 하이 전 당 비서 본인과 가족의 축재 규모가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호찌민시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이 중의적으로 돼지 두 마리를 의미하기도 하는 ‘하이 헤오’(hai heo)로 통했다는 점으로부터 대중의 눈에 비친 호찌민시 최고 권력자의 수치심 모르는 치부의 행적을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레 타인 하이를 향해 최근 몇 달간 사정의 칼날이 점점 목을 겨눠 오고 있었다. 우선 하이 전 당 비서의 친동생 레 떤 훙(Lê Tấn Hùng)이 시감찰국의 감사에 올랐다. 레 떤 훙은 호찌민시 소유 국영기업인 사이공농업공사(Saigon Agriculture Corporation)의 사장직을 맡고 있는데, 회사 소유 토지의 불법 유용과 공금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부인인 쯔엉 티 히엔(Trương Thị Hiền) 역시 호찌민시 간부 아카데미(Học viện Cán bộ) 원장으로 있을 당시 아카데미 건물 신축과 관련된 부패 의혹을 받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약관의 나이에 호찌민시 12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에 오른 아들 레 쯔엉 하이 히에우(Lê Trương Hải Hiếu)마저 최근 당규 위반으로 당의 징계를 받았다. 레 타인 하이의 가족과 심복들이 잇달아 공안당국의 철퇴를 맞고 있는 것이다.

따이 전 부위원장이 구속되기 3개월 전인 2018년 9월초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의 또 다른 전직 부위원장이자 역시 하이 전 당 비서의 사람인 응우옌 흐우 띤(Nguyễn Hữu Tín)이 구속되었다. 그가 공안부의 살생부에 오른 건 부위원장 재직 중 라베뉴 크라운 사례와 유사하게 어느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공개 입찰 없이 세 건의 특혜 사업을 몰아줌으로써 국가 재산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기 때문이다. 12월에 라베뉴 크라운 사건이 터지자 이 건 역시 띤 전 부위원장의 혐의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하이 전 당 비서의 오른팔 띤 전 부위원장이 부동산 개발 특혜를 줬다는 이가 바로 “알루미늄 부”(Vũ nhôm)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다낭의 부동산 재벌 판 반 아인 부(Phan Văn Anh Vũ)이다.

다낭에서 알루미늄 새시를 만들어 팔던 “알루미늄 부”는 다낭시의 유력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아 다낭의 알짜 부동산 개발 특혜를 독점적으로 수주하면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하루아침에 부동산 재벌이 된다. 당시 그의 뒤를 봐줬던 유력 정치인 중엔 1997년부터 2013년까지 다낭시의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시당위원회 비서를 했던 다낭시의 1인자 응우옌 바 타인(Nguyễn Bá Thanh)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은 이를테면 ‘다낭의 레 타인 하이’라 할 만한 인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5월 응우옌 푸 쫑(Nguyễn Phú Trọng) 총비서가 반부패 드라이브에 힘을 싣기 위해 새로 개편한 당 반부패조직의 핵심 수장 중 한 명으로 선임되었던 사람이다. 그가 2015년 초 암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2018년 “알루미늄 부” 스캔들이 터진 후 당시 현직이었던 응우옌 쑤언 아인(Nguyễn Xuân Anh) 다낭시 당 비서 겸 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명의 다낭시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될 때 함께 구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알루미늄 부”가 다낭을 넘어 호찌민시에까지 자신의 부동산 개발 사업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다낭의 1인자를 뛰어넘는 막강한 정치적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공안부의 고위급 인사들이다. “알루미늄 부”가 세간에 이름을 알린 건 2018년 초 독일로 도주를 시도하던 그가 싱가포르에서 체포되어 송환되면서부터이다. 당시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혐의는 “국가기밀 누설”이었다. 부동산 업자가 누설할 국가기밀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 그리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에서 그가 해외도주에 거의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공안부 정보계 라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8년 여름, 부이 반 타인(Bùi Văn Thành)과 쩐 비엣 떤(Trần Việt Tân), 두 명의 현직 공안부 차관이 동시에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알루미늄 부”의 공안부 배경의 정점에는 전직 공안부 장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전직 공안부 장관은 다름 아닌 2016년 국가주석의 자리에 오른, 베트남의 ‘넘버투’ 쩐 다이 꽝(Trần Đại Quang)이다. “알루미늄 부” 스캔들이 다낭을 휩쓸고 호찌민시에까지 이르러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띤 전 부위원장이 구속된 때가 2018년 9월초, 그로부터 얼마 뒤 9월 21일 쩐 다이 꽝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이 발표된다.

“알루미늄 부”가 누설했다는 국가기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사실은 없지만 독일에서 도피 생활 중이던 찐 쑤언 타인(Trịnh Xuân Thanh)이 2017년 여름 돌연 자진 귀국한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확히는, 찐 쑤언 타인이 자진 귀국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납치되어 강제 송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 “알루미늄 부”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찐 쑤언 타인은 허우쟝(Hậu Giang)성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으로 2009년부터 2013년 사이 베트남 국영 석유그룹 페트로베트남(Petro Vietnam)의 자회사 중 하나인 페트로베트남 건설회사의 회장이었다. 페트로베트남으로부터 여러 개의 대규모 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한 페트로베트남 건설회사 경영진은 예의 부실과 무능력으로 발전소 완공을 수년간 지체시켰고, 횡령과 방만한 운영으로 회사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2016년 여름 공안당국의 수사가 들어오자 타인 전 회장은 독일로 도주했던 것이고, 공안부는 뒤늦게 그를 국제 수배 대상에 올려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못 잡는 건지 안 잡는 건지, 1년 가까이 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 하고 있었다. 권력형 대형 부패 사건들이 과거에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역시 흐지부지 될 것 같았던 페트로베트남 스캔들에 대한 사정당국의 조사는 그러나 2017년 여름 타인 전 회장의 ‘자수’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공안부 내에 부패 간부들을 잡으려는 반부패 공안파와 반대로 이들을 비호하려는, 당시 꽝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부패 공안파 사이에 끊임없는 공작-반공작이 있어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페트로베트남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 2017년 말 페트로베트남 전직 회장 두 명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그 중 한 명인 딘 라 탕(Đinh La Thăng)은 레 타인 하이의 뒤를 이어 호찌민시 당 비서에 오른 인물로 무려 베트남 최고 권력집단 정치국 19인 중 한 명이다. 현직 정치국 위원이 부패 혐의로 구속된 것은 베트남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딘 라 탕과 그의 공범들의 잘못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타인 전 회장과 공모해 발전소 건설 사업과 관련해 횡령 등의 비리를 저질러 국가재산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일이고, 둘째는 오션뱅크(Ocean Bank)와 관련된 비리 행위이다. 오션뱅크는 은행업 규제가 느슨해져 합자 은행들이 우후죽순 생기던 2007년 오션그룹(Ocean Group) 창업자 하 반 탐(Hà Văn Thắm)이 주도해 설립한 합자 상업은행이다. 여기에 이듬해 페트로베트남이 3천5백만 달러를 투자해 주식 20%를 보유한 공동 대주주가 된다.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에서 왜 은산분리 원칙이 필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페트로베트남이 18개의 자회사들, 그리고 46개의 계열사들을 거느리며 무분별하게 사업 확장을 하는 데에 오션뱅크를 사금고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으로 오션뱅크 입장에선 베트남 최대 기업인 페트로베트남의 주거래 은행이 되어 손쉬운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 불법과 부정이 횡행했고, 정치적 이유로 결정된 대출들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은행의 자산은 급속히 부실화하였다. 결국 2015년 베트남 중앙은행은 오션뱅크의 전 주식을 백지화하고 청산 절차를 밟는다. 페트로베트남의 투자액 3천5백만 달러(약 4백억 원)가 공중 분해되는 순간이었다.

2018년 법정에 선 딘 라 탕은 그가 페트로베트남 회장 당시 자행한 범죄행위들의 죗값을 물은 검사의 논고 뒤에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모두 당시 수상이 승인한 일이었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에서 2016년 기간 동안 딘 라 탕은 처음에는 페트로베트남의 회장으로 있었고, 2011년부터는 당시 수상의 천거로 입각, 교통부 장관을 했다. 이 기간 베트남 수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인물은 응우옌 떤 중(Nguyễn Tấn Dũng)이다. 중 전 수상은 2016년 12차 공산당대회에서 쫑 총비서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며 은퇴를 하지만, 딘 라 탕은 레 타인 하이의 뒤를 이어 호찌민시 당 비서와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다. 딘 라 탕은 중 전 수상 계파의 차세대 리더 격이었던 셈이다. 중 전 수상을 꺾고 2016년 연임에 성공한 쫑 총비서가 주도하고 있는 반부패 드라이브가 그런 딘 라 탕을 잡은 것이다.

 

당의 귀환: 반부패 드라이브의 기원과 함의

중 전 수상은 지대추구, 사익추구형 정치인 네트워크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다(Vuving, 2013).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들은 1986년 도이머이(Đổi Mi)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팽창해 2000년대에 이르러 중앙정부 제 부처와 지방정부 각급 조직은 물론 베트남공산당 최고 권력기구 내 주도권마저 장악한다. 이들의 국가 장악은 베트남 국가의 상업화(지대추구)와 국가권력의 파편화(당 지도력 약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서로 강화하는 이 두 경향은 베트남 개혁개방과 같이 태어나 함께 자라왔다. 1980년을 전후해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이 첨예해지며 식량공급 부족이 극심해지자 일부 지방정부들이 국가의 법규와 중앙의 명령을 어기며 불법적인 상업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 베트남 개혁개방의 시원이다. 이후 이들 지방의 일탈적 상업행위, 시장 요소의 도입이 생산 급증의 성과를 내자 중앙에 의해 사후적으로 당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이 이어졌고, 이것이 결국 1986년 도이머이의 선언으로 귀결된 것이다(Fforde et al., 1996). 이 과정에서 국가권력을 분점한 중앙과 지방의 각급 부처와 조직들은 그 이후 전개된 본격적인 시장지향 개혁 과정에서 자신들이 점유한 공적 권력을 이용하여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토지임대와 대출, 사업허가와 정부규제, 세금과 관세 등의 영역에서 각종 특혜를 부여해 새롭게 열리는 시장 기회를 선점하고 부를 축적하게 된다. 이들은 막대한 이윤의 원천인 공적권력을 자신들의 수중에 두는 데에 혈안이 되었고, 이는 갈수록 더 많은 조직과 간부들이 중복되는 권한들을 행사하는 현상을 심화시켰다. 도이머이 이후 시장개혁은 시장에서 국가가 퇴각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가 스스로 시장화되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국가권력의 파편적 분점 경향이 가속화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Fforde, 2017).

국가권위의 약화 속에 국가조직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부패는 베트남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화려한 다아아몬드 플라자 옆에 버려져 있는 빈 땅 라베뉴 크라운 부지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베트남 경제의 감춰진 속살, 그러나 결국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치부를 상징한다. 그리고 페트로베트남-오션뱅크-“알루미늄 부” 스캔들은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베트남 경제의 국가부문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최근에 터진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미 2007년 무렵 국영기업-국영은행-부동산 3각 유착은 조선업과 통운 등 핵심 기간산업의 몰락을 초래하며 베트남 경제 전체를 거의 파산시킬 뻔했다. 여기에 2008년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가 덮치며 베트남 경제는 이후 몇 년 동안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을 반복하며 극심한 불안정을 노출한다. 특히 실패한 국영부문을 떠안은 정부의 재정은 이후 급속히 악화되어 재정수지 적자 규모와 정부채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공공 인프라, 교육과 보건 등 베트남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필요한 분야에 대한 정부의 공공투자 여력을 크게 제약하며 베트남 중장기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GDP 성장률
출처: Tradingeconomics.com/The State Bank of Vietnam
인플레이션
출처: Tradingeconomics.com/The State Bank of Vietnam
재정수지
출처: Tradingeconomics.com/The State Bank of Vietnam
정부채무(GDP 대비)
출처: Tradingeconomics.com/The State Bank of Vietnam

2016년 본격화된 현 정부의 반부패 드라이브는 베트남공산당의 존립에 대해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당내 당국가발전파 세력들의 구당운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미 2011년 응우옌 푸 쫑이 처음 총비서 자리에 올랐을 때 당내 부패 세력 척결을 위한 작업은 시작되었었다. 하지만 중 당시 수상을 정점으로 하는 사익추구파들이 중앙위원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공안부를 비롯한 반부패 사정 기구들마저 상당부분 이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상황에서 당국가발전파의 부패 척결 노력은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중요한 반격의 계기는 2012년에 만들어졌다. 쫑 총비서가 수상의 지휘 아래 있던 반부패감찰국을 조직 개편하는 데 성공해 이를 당 정치국 직속으로 만들면서 총비서가 직접 지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두 세력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계속하지만, 2015년 오션뱅크 사태가 터지고, 여기에 페트로베트남을 비롯해 중 수상의 사람들이 회장직을 맡고 있던 국영기업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정보가 12차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퍼지면서 그의 총비서직 도전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중 전 수상을 물리치고 연임에 성공한 쫑 총비서는 사익추구 세력이 배제된 반부패 공안 조직에 힘을 실어주며 유례없이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에 나섰다(Vuving, 2017). 2016년 이후 지금까지 징계 또는 기소된 당원이 1,300 명이 넘고, 그중에는 중앙위원회 위원 최소 10명과 딘 라 탕 정치국 위원이 포함되어 있다(Le, 2018).

 

갈림길에 선 베트남

쫑 총비서가 주도해온 반부패 드라이브가 부패 고위인사 척결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자 반부패 사정 당국이 ‘몸통’은 못 건드리고 ‘꼬리’만 쳐낼 뿐이라는 저간에 만연했던 냉소적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던 사익추구 세력들이 숙정 대상에 올라 줄줄이 경고 또는 징계를 받거나 심한 경우 사법 처벌을 받으면서 당내 당국가발전파의 헤게모니가 한층 강화되었다. 2018년 9월 꽝 주석이 급작스럽게 서거한 후 다음 달 열린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쫑 총비서가 국가주석직을 겸하는 것으로 만장일치로 결의되었는데, 이는 현재 중앙위원회 내 권력균형에서 당국가발전파의 우위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2000년대: 사익추구파의 득세, 2016년 이후: 당국가발전파의 반격
출처: Vuving (2017)

하지만 당국가발전파의 ‘구당운동’은 다만 부패 세력 척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영부문의 개혁이 그 중심에 있다. 여전히 국가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에너지, 금융, 통신, 운송, 부동산, 도소매 등 핵심 내수부문을 장악하고 있는 국영부문은 그 안에서 사익추구 세력들이 번성하게 하는 배양액이나 다름없다(Nguyen et al., 2017). 방만한 경영과 만연한 횡령, 무모한 선단식 사업 확장과 투기성 부동산 투자, 이들의 사금고나 다름없는 은행들로부터 ‘묻지마’식 대출 등의 관행은 부패한 관료, 이들과 연결된 국영기업 회장과 은행장, 부동산 업자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다 주었지만, 국가재정을 빈사상태에 빠뜨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영부문이 토지와 대출 등 희소한 자원을 독차지함으로써, 민간부문이 발전할 수 있는 싹을 잘라내고 있다. 베트남 민간부문이 저임금 노동력에 기반을 둔 단순 조립 공정 제조업을 넘어서 부품과 소재 현지화 및 첨단 산업화 등 산업단계의 고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본과 인력이 그러한 분야로 흘러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국영부문이 온갖 특권을 유지한 채 산업 고도화를 위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눈앞의 사적 이익 극대화를 위한 투기만을 일삼는다면 베트남 경제의 장기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트남 경제는 지금 갈림길에 서있다. 핵심 부품을 수입해 저임금 노동력으로 조립 가공 후 완성품을 수출하는 저부가가치 제조업 수출모델로 당분간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딪힐 시점은 그리 멀지 않다. 베트남 경제가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와 다름없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한 단계 질적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영부문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당국가발전파의 국영부문 개혁 드라이브가 성공하는지에 베트남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소개

김용균(yongkkim@ewha.ac.kr)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UNC-Chapel Hill)에서 2009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7년 이화여대로 옮기기 전까지 캘리포니아 소재 퍼시픽대학교(University of the Pacific)에서 가르쳤다. 주로 국제정치경제 분야 연구를 진행해왔고, 최근 베트남 정치경제에 관한 논문 세 편을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 Fforde, Adam and Stefan de Vylder. 1996. From Plan to Market: The Economic Transition in Vietnam. Boulder, Westview Press.
  • Fforde, Adam. 2017. “The Emerging Core Characteristics of Vietnam’s Political Economy.” Asian-Pacific Economic Literature 31, 2, 45-60.
  • Le, Hong Hiep. 2018. “Vietnam’s Anti-Corruption Campaign: How Much Is It about Political Infighting?” ISEAS Commentary 2018/77, July.
  • Nguyen, Manh Hai and Michael O’Donnell. 2017. “Reforming State-Owned Enterprises in Vietnam: The Contrasting Cases of Vinashin and Viettel.” Asian Perspective 41, 2, 215-237.
  • Pincus, Jonathan. 2015. “Why Doesn’t Vietnam Grow Faster? State Fragmentation and the Limits of Vent for Surplus Growth.” Journal of Southeast Asian Economies 32, 1, 26-51.
  • Vuving, Alexander L. 2013. “Vietnam in 2012: A Rent-Seeking State on the Verge of a Crisis.” Southeast Asian Affairs, 325-347.
  • Vuving, Alexander L. 2017. “The 2016 Leadership Change in Vietnam and Its Long-Term Implications.” Southeast Asian Affairs, 421-435.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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