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⑦ “이제는 아시아 시대”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 ⑦ 국경·정치 벽 넘는 문화교류

[중앙일보] ⑦ “이제는 아시아 시대”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 ⑦ 국경·정치 벽 넘는 문화교류

지구촌 대중문화의 새 용광로, 중국
[중앙일보] 입력 2013.10.10 01:16 / 수정 2013.10.10 09:23
중앙일보-서울대 아시아연 기획
이제는 아시아 시대 ⑦ 국경·정치 벽 넘는 문화교류

6일 막을 내린 ‘슈퍼스타 차이나’에서 우승을 차지한 주자자(祝家家·26)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그는 중국 소수민족인 투자(土家)족 출신으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서는 꿈을 키워온 ‘중국의 허각’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몸무게를 12㎏ 이상 감량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 슈퍼스타 차이나]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공동취재단이 지난달 방문한 중국 우한(武漢)시 후베이(湖北)위성TV 방송국에선 ‘슈퍼스타 차이나(我的中國星·이하 슈스차)’ 녹화 준비가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방청객 20여 명은 이 프로그램이 한국의 대표적인 오디션(스타 발굴) ‘슈퍼스타K(슈스케)’의 포맷(Format)을 빌려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톱12 진출자들은 서울에서 40일간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거부감 대신 호감을 보였다.

 “본선 진출자들이 한국에서 한 달 동안 무척 세련되게 변신해 돌아왔어요. 한국의 음악·패션·메이크업 등이 앞서니 가서 배우고 고치고 오면 좋은 거 아닌가요?”(친졔·30·여·프로그래머)

  혐한류(嫌韓流·한류 혐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 한발 앞선 한국에서 배워 오는 게 뭐 이상한가”라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프로그램이 발전하게 돼 감사하다”는 중국인도 있었다.

히든싱어·슈스케 포맷도 사들여

 중국은 지금 전 세계 인기 포맷의 경연장이 됐다. 대표적인 분야가 오디션이다. 올 하반기에만 한국과 미국·네덜란드 등에서 들여온 오디션 프로그램 13개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경쟁이 과열됐다고 중국의 방송 규제 당국인 광전총국(光電總局)이 지난 8월 신규 오디션 프로그램을 더 이상 제작하지 못하도록 지시(셴거링·限歌令)를 내렸을 정도다.

 한국은 MBC의 ‘나는 가수다’가 후난(湖南)위성TV에서 중국판 ‘나는 가수다(我是歌手)’로, Mnet의 ‘슈퍼스타K’가 후베이위성TV에서 ‘슈스차’로 각각 제작돼 전 세계 포맷과 경쟁하고 있다.

한·중 합작 그룹·영화도 속속 제작

 후난위성TV의 ‘나는 가수다’는 평균 시청률 2.38%를 기록했다. 후베이위성TV의 ‘슈스차’ 평균 시청률은 1.27%. 시청률 1%가 넘는 프로가 연간 10개 안팎에 그치는 중국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로 평가된다. 박우진 CJ E&M 슈스차 프로듀서는 “중국 방송국 시청률 순위 20위권에 머무르던 후베이TV가 슈스차의 인기에 힘입어 10위권으로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시장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대중문화의 새로운 용광로가 되고 있다. 방송 분야뿐 아니라 다른 대중문화 영역에서의 융합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12인조 그룹 엑소(EXO)는 엑소M과 엑소K로 나뉘어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6명씩 데뷔했다. 엑소M은 중국인 멤버 4명과 한국인 2명으로 구성돼 중국에선 자연스레 중국 그룹으로 통한다. 그룹 타임즈·엠포엠(M4M) 등 한국과 중국의 연예기획사들이 공동으로 기획·제작한 한·중 합작그룹도 속속 데뷔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인력·자본·기술이 결합한 한·중 합작영화 제작도 활발하다. 영화 ‘이별계약(分手合約)’은 지난 4월 중국 개봉 이틀 만에 제작비(약 52억원)를 회수했다. 영화 ‘미스터 고’ ‘권법’ 등은 한국이 기획·제작하고 중국이 자본을 투자한 사례다. CJ E&M은 지난달 베트남 최대 국영방송사 VTV와 드라마 공동제작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 대중문화계 일각에선 한류의 거품이 꺼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슈스차 녹화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한국과 중국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서로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다”며 오히려 긴 안목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알란 탐 “K팝, 중국에 큰 영향”

슈스차 대기실에서 만난 심사위원 알란 탐(Alan Tam·63)도 “발전된 한국의 K팝이 중국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여전히 한류 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K팝 가수들을 보면 장궈룽(張國榮) 등과 활동하던 80년대 홍콩 대중문화 전성기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가수·영화배우로서 1980년대 아시아 대중문화를 쥐락펴락한 ‘원조 아시아 아이돌’인 알란 탐이 2013년 한국 포맷을 수입해 만든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모습은 아시아 대중문화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김수정 교수는 “설령 한류의 기세가 한풀 꺾이더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취향·습관 등 문화 수용자의 정체성 속에 살아남는다. 문화는 섞이고 변화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영토, 과거사 문제 등을 놓고 정치적으론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정치와 국경을 뛰어넘고 있다. 한류의 인기뿐 아니라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여전히 인기이고, 중국 문화도 한풍(漢風)이란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통한다. 홍콩 영화나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에 열광했던 사람부터 최근 한류 드라마와 K팝에 열광하는 사람들까지 대중문화의 교류는 도도하게 이어지고 있다. 열린 가슴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를 받아들인 그들의 수용력은 정치와 경제 가 만드는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아시아를 만드는 ‘문화의 쇄빙선’이다.

우한(중국)=강명구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장·사진)
신혜선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슈퍼스타 차이나 출연자들 한국서 한 달 훈련 … 뭘 먹는지도 다 보여줘”
[중앙일보] 입력 2013.10.10 01:18 / 수정 2013.10.10 09:23
짱즈 ‘슈퍼스타 차이나’ 연출자
중국 관객들 독설은 싫어해

‘슈퍼스타 차이나(我的中國星)’는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송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도 차별화에 성공해 시청자의 선택을 받았다. ‘슈퍼스타K’의 포맷(프로그램 제작 구성안)을 수출한 한국의 CJ E&M은 ‘플라잉 PD(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연출자)’와 각 분야 제작진을 보내는 방식 등으로 이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 제작진은 한국이 창작한 프로그램 포맷을 어떻게 변형해 받아들이고 중국화했을까. 중국 후베이 성 우한 후베이TV 방송국의 리허설 현장에서 ‘슈퍼 스타 차이나’의 짱즈(藏志·35·사진) 연출책임자를 인터뷰했다.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은.

 “출연자들이 한국에 가서 한 달가량 음악 훈련을 받고 헤어스타일과 패션도 한국식으로 바꿨다. 변신 과정을 중국 시청자들에게 자세하게 보여준 것이 가장 큰 인기 요인이었다. 중국에서도 출연자를 변신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겉핥기 식이었다. 우리 프로그램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출연자가 뭘 먹는지까지 시시콜콜하게 보여줬다. 한국의 실력 있는 제작진이 도와준 덕분에 중국의 프로그램 제작 수준을 끌어올렸다.”

 -만약 일본 제작진이 한국 출연진을 일본에 데려가 일본식으로 변신시킨다면 한국 시청자는 좋아하지 않을 텐데.

 “중국은 한족(인구의 약 92%)을 포함해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여서 포용하고 융합하는 문화적 분위기가 강하다. 중국 젊은이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특히 높다. 한국의 수많은 드라마와 예능이 중국에서 환영받는 이유는 중국의 문화 및 가치관과 거의 충돌하지 않아서다. 한국에 남아 있는 어른에 대한 공경 같은 유교적 문화 전통이 중국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향과 부합한다. 일본도 아시아에선 문화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 중 하나이지만, 자극적인 예능 감각만 너무 발달했다는 문제가 있다. 중국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건 예능 속의 정(情)인데 일본 프로그램엔 그런 따뜻함이 없다.”

 -슈퍼스타K보다 슈퍼스타 차이나에 더 많은 정이 녹아 있는 듯한데.

 “중국 관객은 너무 악랄하게 평가하거나 프로그램 분위기를 암울하게 끌고 가는 데 대한 반감이 크다. 독설보다는 진실한 평가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시청자는 심사위원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와 행동에서 나오는 재미를 중시한다. 단순히 포맷이나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중국 정서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중국화라고 생각한다.”

 -중국 시청자는 프로그램의 어떤 측면을 중시하나.

 “중국시장에서 스토리는 이미 식상해 먹히지 않는다. 출연자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 결국 예능도 사회를 반영한다.”

우한=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