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한·중·일 장벽 허물기, 인본주의가 답

[중앙일보] 한·중·일 장벽 허물기, 인본주의가 답

한·중·일 장벽 허물기, 인본주의가 답
[중앙일보] 입력 2013.06.21 01:35 / 수정 2013.06.21 09:45
중앙일보-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 ② 공통의 가치를 찾아서

과연 아시아에는 공통의 가치가 있는가. 그것은 보편적 가치로서 어떤 실천적 기능을 할 것인가. 아시아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갖게 되는 의문이다. 아시아는 지난 수세기를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많은 상처를 받았고 전쟁·가난·낙후·분단·분열의 역사 속에서 국가 발전을 지상의 목표로 삼아 다투어 경쟁해 왔다. 이제 아시아는 국가와 민족, 이념과 체제의 경계를 넘어 공존과 공생을 도모하기 위해 보편적인 가치를 확립해야 할 시점에 왔다.

탈북자 북송, 자국 이기주의 결과

 그런데 최근 탈북 청소년들이 라오스에서 중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사건을 보면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인도주의적 가치의 공유가 가능한지 근본적 회의감이 들었다. 지난해 서해에서 중국 대형 선단의 지속적인 불법어로 행위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한국 해경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어획량 싹쓸이에 집착하는 중국인들의 배금주의적 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 역시 아시아 국가들에 큰 숙제를 남겼다.

 일본은 이웃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침략의 역사를 전면 부정하는 파렴치한 언동으로 국내에서 정치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시아 주변 국가들을 분노와 수치심에 떨게 하다가도 강대국인 미국이 쐐기를 박으면 얼른 태도를 바꾼다.

 이런 중국과 일본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자국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적 비윤리성과 가치의 도덕성을 결합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지금껏 아시아 국가 사이에는 가치체계를 명시하기보다는 현실적인 협상과 타협의 지혜와 기술을 더 중시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 호혜라는 동일한 이익을 추구하되 정치 및 문화체계의 차이는 사실상 방치해 왔다. 공통적 가치 개발에 소홀했던 것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조화(和諧· harmony)란 입장과 이익이 서로 다른 현실 속에서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는 수단이자 과정이지만 가치 판단의 기준은 아니다. 이 때문에 아시아 각국이 평화와 안정의 추구를 내세울 때도 실제로는 서로 간에 완전한 신뢰를 갖지는 못한다. 남북 분단 상황은 한반도를 국익 실현의 중요한 자원으로 여기는 주변 국가들 사이에 가치의 공유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민감한 현실이다.

 문화주권주의와 자국 중심의 천하(天下)론이 결합된 중국, 신보수주의와 신국가주의의 결합을 노리는 일본, 그리고 폐쇄적이고 자의적인 한반도 전략을 고수하는 북한을 보면서 아시아가 공통의 가치보다는 여전히 현실적 협상과 타협의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편한 전망을 갖게 된다. 아시아 국가들의 체제·규모·이념이 현저히 다른 상황에서 가치관의 공유를 주장하는 것은 솔직히 공허할 수도 있다.

경제만 앞세우면 힘의 세계 전락

 그럼에도 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치는 인본(人本)주의와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조화의 정신이다. 문제는 팽배한 국가주의가 만드는 정치적 장벽을 조화의 가치가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8차 당대회(2012년 11월)에서 “사회주의 문화강국을 건설하겠다”고 천명했다. 경제성장에만 집착하면서 소홀히 했던 인문세계의 실현, 즉 삶의 문화적 질을 회복하고 제고하는 데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은 곧 인간의 존엄성과 안전, 행복을 보장하는 인본주의적 가치의 실현을 뜻한다.

 우리가 민주·인권, 생태환경 보호, 자원 보전, 기후변화 대처, 식품안전, 보건·위생, 치안, 재난 방지, 문화교류, 개방성 등이 충실히 실현된 아시아 건설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국가 간의 관계는 이를 위해 조율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경제와 산업의 발달, 국력 증대가 궁극적으로 자국 국민과 이웃 나라 국민이 함께 누리는 삶의 안전과 질을 실현하기 위한 방향에서 추구되고 평가되는 틀을 확립한다는 뜻이다. 이때 아시아는 평화와 안정, 공생공영(共生共榮)의 세계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시아 가치의 실현이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인류학과 사회학의 대가였던 페이샤오퉁(費孝通·1910∼2005)은 “모든 사람은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충실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길러,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이 함께 어울리게 되면, 그때 비로소 천하가 하나가 된다(各美其美 美人之美 美美與共 天下大同)”고 말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선함과 진실을 의미한다.

‘인간 중심’ 전통의 정신 되살려야

아시아는 나라와 민족의 규모 차이가 크고 체제가 달라 공통된 가치를 확립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국이익과 자국의 특수성을 내세워 국력에 따라 질서가 잡히는 힘의 세계로 전락한다. 따라서 아시아는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는 인간 중심의 가치를 세워야 한다.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원문 링크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50/11863750.html?ctg=)

중국이 내세운 ‘신천하주의’ … 폐쇄성 경계해야
[중앙일보] 입력 2013.06.21 01:36 / 수정 2013.06.21 09:45
전문가 5인 공개 토론
무력 아닌 문명 강조했지만 여전히 중국 중심적 발상

아시아 시대를 맞아 국가주의적 한계를 넘어선 보편적 가치는 무엇일까.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 속에 아시아 가치를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을까. 최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한 ‘세계의 중심 아시아, 보편적 가치를 찾아서’라는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공개 논쟁을 벌였다. 아시아의 보편가치와 실현 방안을 집중 모색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역시 중국으로 쏠렸다.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기조 발제에서 “중국 공산당의 장기 집권을 통한 정치적 안정 위에서 시장경제를 접목한다는 ‘중국식 모델론’이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중국과 서구 및 주변국 간의 현실적 타협 원리로 제시돼 왔다”며 “그러나 이 모델은 여전히 국가란 틀 안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백영서(국학연구원장)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제국’과 ‘유교’를 제시했다. 백 원장은 “(중국이)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국이지만 제국주의는 아닌 아시아 가치로 백 교수는 ‘신천하주의(新天下主義)’에 주목했다. ‘신천하주의’는 쉬지린(許紀霖) 중국 화둥(華東)사범대 역사과 교수가 내놓은 이론이다. 중국 근대 사상사 전문가인 쉬 교수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천하를 지배한 원리는 무력이 아닌 천하주의적 화하(華夏)문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화된 오늘날 중국의 전통과 경험에서 보편가치를 뽑아내는 한편, 세계 문명 속의 보편가치를 중국에 맞게 바꾸는 작업을 병행하는 ‘신천하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백 원장은 “신천하주의는 여전히 중국 중심적이다. 아시아 전체를 위한 보편 문명을 구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천하주의가 보편 문명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성이 보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일모(동양철학)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강대할 때는 개방적 천하주의가, 그렇지 않은 때는 폐쇄적 천하주의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신천하주의라는 도덕적 이상이 정치적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아시아는 동북아·동남아·서남아·중앙아·중동 등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어 공통적 가치를 도출하기 어렵다”며 “우선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다른 아시아, 서구 순으로 단계별로 아시아 가치를 보편화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아시아는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중시한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질을 희생해 왔다. 서구는 그 반대여서 문제가 된 만큼 서구와 아시아 사이의 균형을 통해 더 보편적인 가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봉길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주목했다. 안 의사는 한·중·일 상설협의기구인 ‘동양평화회의’를 중국 뤼순(旅順)에 조직한 뒤 점차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참여시키자고 주장했었다. 신 총장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는 한·중·일 공동은행 설립, 공동평화군 창설 등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유럽연합(EU)과 유사하면서도 그보다 100년은 앞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데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라며 “한국에 동북아 평화 번영의 허브가 되는 한·중·일 3국 협력기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리=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원문 링크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52/11863752.html?ctg=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