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G2시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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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시대 해법]① 美-中 경쟁은 기회…韓 외교는 위기상황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한 15회 미-중관계 세미나에 참석한 외교 전문가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제공.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한 15회 미-중관계 세미나에 참석한 외교 전문가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제공.

올 상반기 한국 외교정책의 화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였다. AIIB의 가입 여부와 결정 시점, THAAD 도입 문제를 두고 여전히 여론의 평가가 엇갈린다.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을, 국내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지난주 개최한 미-중관계 세미나의 주제를 ‘빈번해지는 미중사이의 딜레마: 한국의 해법은?’으로 잡았다.

진행을 맡은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에서 직접 무력으로 충돌하기보다는 ‘대리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논제를 꺼냈다. 두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은 외교 무대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일까, 아니면 전략적인 외교정책으로 국익을 극대화할 ‘꽃놀이패’를 쥔 것일까.

◆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 위기 아닌 기회”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지금의 외교 상황을 한국 정부가 기회로 봐야 한다며 “(정치)전문가들이 최악의 위치라고 말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중간 경쟁을 위기가 아닌 ‘러브콜’로 생각하자”고 말했다. 한반도는 미중이 아시아에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요충지이기 때문에, 두 나라가 경쟁하는 상황을 이용해 최대한 이익을 누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원장은 중국의 안보정책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언급하며 한국전쟁의 예를 들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신생국가에 불과했던 중국이 90만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가면서 북한을 구했습니다. 순망치한이랄까, 북한과 접한 국경지대가 흔들리면 중국도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 겁니다. 중국이 서해 산둥반도에 항공망을 만들었는데, 이 부대가 출격하려면 서해를 거쳐야 합니다. 이 서해를 감싼 것이 한반도입니다.”

미국 정부가 미일동맹을 한미동맹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우려도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평했다. 윤 원장은 “한미동맹 하에서 가장 중요한 주한미군 기지는 평택기지입니다.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미군이 이 기지에서 버티는 한, 중국 함대가 자유롭게 태평양으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결국 중국은 한미동맹의 끈을 끊어야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고, 미국은 이 지점을 지켜야 하는 상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중 경쟁은 잠재적 기회지만, 한국 외교는 잠재적 위기 상태”

18대 국회에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이사장은 “한국 외교는 잠재적 위기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가 국제 질서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며 한미동맹이라는 지렛대를 한국의 국익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신(新)밀월 시대’라는 평을 받는 미일동맹이 한국 정부에게 교훈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 내 (세력)재균형정책을 추진하는데 가장 손뼉을 잘 맞춰주는 동맹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데 가장 보조를 맞춰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이 방위지침을 개정해 자위대를 해외로 파견할 길을 열어놓은 점 등을 꼽으며 “미국이 아시아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한국이 마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이나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한국 정부가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도 아쉬워했다. 박 이사장은 한국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재발 방지 약속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국과의 관계 문제는 제쳐두고 미국이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 집중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색된 남북관계도 한국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줄였다고 평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잘 풀려야 한국이 미국과 대화할 때도 북한 문제와 관련해 주도권을 쥘 수 있지 않겠느냐”며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외교 정책의 창의적인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AIIB 참여는 잘한 결정…가입 확정 시점도 적절했다”

한국 정부가 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이날 미중관계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 모두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가입 결정 시기도 적절했다고 평했다.

주중대사를 지낸 신정승 국립외교원 중국센터 소장은 “중국은 그동안 국제금융 분야에서 자국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불만을 갖고 있는데다, 미국은 한국의 AIIB 가입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한국이 (AIIB 가입을 위한) 적절한 시기를 저울질해 찾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이 AIIB에 참여해 기구가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나쁜 결정인 것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신 소장은 유럽 국가들이 참여한 덕에 중국의 지분율이 낮아졌고, 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최신 금융노하우를 AIIB 운영에 접목할 수 있을 것이란 점도 호재라고 봤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영국이 선진국 중에선 가장 먼저 가입 발표를 했지만, 영국은 유럽 국가지 아시아 국가는 아니다”라며 “한국이 AIIB에 참여함으로써 중국의 구상이 완성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가입 결정은 중국에게 큰 선물을 준 것”이라며 “AIIB 가입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도 중국에게서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이 가입 발표를 일찍 했더라도 지분율이 크게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윤 원장은 AIIB 창설로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아시아개발은행(ADB)에 앞으로 5년 동안 1500억달러를 추가로 납부하겠다고 밝힌 점도 좋은 소식이라며 “ADB와 AIIB를 통해 아시아에 돈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이사장은 “앞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개발 사업이 계속 나올텐데, 한국 소외되면 국익을 챙길 수 없다”며 AIIB 가입 결정을 지지했다. 그는 ADB와 AIIB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두 기구에 모두 소속된 한국이 외교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중국-러시아 개발 등 인프라 투자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발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G2시대 해법]② 中 소프트파워 역부족…”美-中 충돌 가능성 낮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우). /블룸버그 제공.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우). /블룸버그 제공.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미국이 추진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두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 외교가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양대 축으로 떠오른 미국과 중국의 국가 이익이 상충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까닭이다.

미국이 한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형성한 ‘삼각동맹’의 한 축인 일본은 AIIB 가입 여부를 끝내 확정하지 않았다. 한국 내에선 THAAD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지난주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한 미-중관계 세미나 에 참여한 외교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의 급부상에도 미국과 중국이 직접 충돌할 가능성은 높지 않게 봤다.

◆ “미·중, 직접 충돌은 피해…‘공진관계’로 바뀔 것”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이사장은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온 차이나(On China)’라는 책에서 앞으로 미중관계는 갈등이나 마찰보다 상생과 협력 관계로 갈 것이라며, 일종의 ‘공진관계(co-evolutionary relationship)’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나도 동의한다”고 말을 이었다.

이 같이 전망하는 근거로는 급격하게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을 들었다. 박 이사장은 “미국은 중국과 경제 전략적 관점에서 대화를 풀어가고, 가능하면 충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에 THAAD를 배치하는 문제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중요하다면, 왜 미국과 중국이 직접 만나서 대화하지 않겠느냐”며 “양국이 직접 불편한 주제로 대화하는 일을 피하기 때문에 중간에 한국을 넣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질서를 지키려면 미중관계가 원만해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일본은 과민할 정도로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고 있고,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동중국해에서 문제가 생기면 미일동맹도 영향을 받는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며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양국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말했다.

◆ 중국 소프트파워 아직 역부족…미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중국에게도 유리”

중국이 미국과 나란히 주요 2개국(G2) 자리를 꿰찬 데 이어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13억명에 달하는 인구와 경제력을 앞세워, 외교무대에서도 미국을 제칠 것이란 얘기다. 신정승 국립외교원 중국센터 소장은 그러나 “중국이 자국 중심의 가치체계를 수립하려면 앞으로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 소장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로부터 존중을 받는 능력인 ‘소프트파워(soft power)’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평했다. 그는 “미국은 시장 경제나 인권 같은 보편적인 가치 내세워 주변국의 지지를 받는 반면 중국은 핵심이익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미국과 경쟁하기 어렵다”며 “중국은 자국에게 유리한 가치체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업 수준이나 정부 운영체계, 사회 규범 등 부분에서도 미국이 한 수 위라고 봤다.

신 소장은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군사력을 포함한 국력 차이가 여전하는 것이 이유다. 중국은 지난 2010년부터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아직 미국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 면에서 격차가 있다. 그는 “중국이 군 현대화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연간 군사비 지출액이 많아야 2000억달러 수준인데, 이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고 군사기술까지 같이 보면 (양국간) 차이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내부 개혁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점도 미국과 본격적으로 충돌할 확률을 떨어뜨린다. 신 소장은 “중국은 과거와 같은 두자리 수 경제성장률을 포기했고, 중국이 안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 때문에 갈수록 성장 속도가 떨어질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목표인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서도 국제질서가 안정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중관계는 결국 협력관계로 바뀔 것이라고 신 소장은 전망했다. 그는 “2014년 말 기준으로 미중 교역액은 5550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으로, 중국이 무역흑자를 거둘 수 있도록 일조한 나라”라며 미중간 상호 경제의존도가 심화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국제문제의 주요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양국이 협력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것이라고 전망도 덧붙였다.

◆ “미중간 직접 충돌은 최악…남북 통일 위해선 한미동맹 역할 중요해”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한국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동맹국과의 관계 때문에 미국이 중국의 입장에 반대하는 외교문제들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댜오위다오(일본 이름 센카쿠열도)와 대만해역을 둘러싼 갈등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윤 원장은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동맹관계이고, 한국과 중국은 동앵국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이 직접 충돌하면 한국의 상황이 난처해지겠지만, 한국의 안보정책은 미국과의 조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면, 주변국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데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 정부의 조정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남북 통일도 결국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이 지역 내 세력균형을 맞춰주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